Religion

청교도, 메이플라워호에 실린 신앙의 항해 — 분리와 개혁 사이에서 피어난 자유의 신학

Marquis.JIN 2025. 11. 1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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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구 종교칼럼 

 

1620년, 겨울로 향하던 대서양 위를 한 척의 배가 떠났다. 메이플라워호(Mayflower). 102명의 캘빈주의 승객이 타고 있었지만, 그 항해는 인류 신앙사의 한 페이지를 바꾼 여정이었다.

 

그들은 부나 탐험이 아니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순례자(Pilgrims), 즉 ‘청교도(Pilgrim Fathers)’라 불린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출발점은 영국 종교개혁의 격랑 속이었다. 로마 가톨릭에서 벗어나 국교회를 세웠지만, 여전히 세속 권력의 그늘이 남아 있었다. 그 안에서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했으니, 그들이 바로 청교도(Puritans)였다.

 

청교도들은 대부분 칼뱅주의(Calvinism) 신앙을 따랐다. 인간의 전적 타락과 하나님의 절대주권, 그리고 예정론에 기초한 이 신학은 그들의 삶과 사회관, 그리고 공동체 질서를 지배했다. 이들의 신앙은 단순한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려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의 길을 걷지 않았다. 칼뱅주의 신앙을 공유했지만, 영국 성공회와의 관계를 두고 두 부류로 나뉘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가로지른 청교도

 

첫째는 분리주의자(Separatists)였다. 이들은 엄격한 칼뱅주의 신학을 따르며, 국교회의 제도와 형식을 부정했다. 교회가 세속과 결탁한 이상, 진정한 신앙은 그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네덜란드로 피신했고, 결국 신대륙으로의 항해를 결심했다.

 

둘째는 비분리주의자(Non-Separatists)였다. 이들은 온건한 청교도로서 국교회를 완전히 떠나기보다, 그 안에서 개혁을 이루고자 했다. 그들 중에는 상인, 고용인, 그리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평범한 영국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하나님께 드리는 순수한 예배를 열망했다는 점에서는 분리주의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메이플라워호의 갑판 위에서 두 부류는 신앙의 자유라는 하나의 이상으로 결속되었다. 분리와 개혁,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같은 목적을 품은 이들이었다. 그들이 도착한 플리머스 식민지는 단순한 이주의 거점이 아니라, 신앙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의 땅이었다.

 

그들의 믿음은 “양심은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이어졌고, 훗날 미국 청교도 신앙과 민주주의 정신의 기초가 되었다.

 

오늘 우리는 풍요 속에서 신앙의 자유를 당연히 여긴다. 그러나 그 자유는 메이플라워호의 돛 아래, 차가운 바람과 맞서 싸운 이들의 눈물 위에 세워진 것이다. 분리주의자와 비분리주의자, 서로 다른 길이었으나 목적은 하나였다 —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예배드리기 위한 믿음의 항해였다.

 

그들의 여정은 끝났지만, 그들의 신앙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항해하고 있다.

 

TheGraceH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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