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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가장 깊은 층에서 — 존재를 씻어내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Marquis.JIN 2025. 11. 16.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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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헤럴드 / 진종구 건강에세이

푸근한 잠을 자는 여인 / 그레이스헤럴드

 

나이가 들수록 잠은 단순한 휴식의 이름을 벗고, 존재의 가장 깊은 층을 지탱하는 신비한 질서로 다가온다. 밤마다 찾아오는 이 어둠은 단지 피곤을 적시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몸과 정신을 새롭게 빚으시는 조용한 공방처럼 느껴진다.

 

임상적으로도 그 은밀한 공방의 흔적은 매우 구체적이다. 뇌척수액과 신경교세포가 함께 만드는 배출의 통로인 뇌 속의 아교림프계(glymphatic system)는 깊은 수면의 어둠 속에서 가장 활발히 움직인다.

 

이 작은 배수로는 마치 “너희의 죄가 진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행하시는 씻김을 닮았다.

 

하루 동안 뇌에 쌓인 독소가 어둠 속에서 씻겨 내려가고, 정신은 새벽의 빛처럼 조금 더 맑아진다. 잠은 육체의 절차이면서 동시에 영혼의 은총이다.

 

그러나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이 찾아오면 이 신비한 정화의 질서가 무너진다. 
저산소증으로 인한 미세 각성, 반복되는 호흡 사건, 수면다원검사(PSG)에 기록되는 불안한 파동들. 이 모든 것은 깊은 잠의 문을 닫아버린다.


아교림프계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뇌는 스스로를 씻어낼 기회를 잃어버린다. 그 결과 가장 먼저 흐려지는 것은 시각 기억력이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얼굴의 윤곽, 오래된 풍경의 결, 하나님이 인생의 길 위에 허락하신 수많은 장면들이 서서히 빛을 잃는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일은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이야기가 닫혀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기막힌 은혜는 여기서도 시작된다.


양압기(CPAP)를 통해 밤의 호흡을 안정시켜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면 산소포화도는 회복되고 깊은 잠은 다시 찾아온다. 그러면 아교림프계의 활성도도 다시 살아나고, 기억의 흐름이 조금씩 되돌아온다.

 

마치 하나님이 “내가 너희를 회복시키리라”말씀하시는 것처럼, 뇌는 자기 정화의 능력을 잃지 않았으며 잠은 회복을 향한 가장 조용한 통로로 남아 있다.

 

노년의 길목에서 나는 잠을 하나의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은 밤이라는 시간을 통해 우리의 의식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시는 분이다. 잠은 우리가 주도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잘 잔다는 것은 단순한 건강 습관이 아니라 자기를 내어맡기는 신앙의 동작이며, 우리 안의 질서를 되살리시는 창조주의 손길에 조용히 순응하는 일이다.

 

잠의 가장 깊은 층에서 아교림프계는 뇌를 씻어내고, 성령의 숨결은 마음을 씻어낸다. 하나님은 이 두 흐름이 겹쳐지는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맑은 성령의 빛’으로 돌아가게 하신다.

 

결국 잠은 흩어지는 존재가 다시 모이고, 잃어가는 기억이 새로이 결을 되찾으며, 무너져가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일어나는 가장 은밀한 예배이다.

 

TheGraceH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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