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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안보는 곧 국가안보다 — 한미 관세협상 타결이 남긴 숙제

Marquis.JIN 2025. 10. 30.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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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 진종구 박사

경주 APEC 정상회담 후 양국 대통령 악수/ 챗GPT

 

한동안 교착 상태에 빠졌던 한미 관세 협상이 APEC 정상회담 직전인 10.29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이재명 대통령이 “투자 방식과 금액, 일정, 손실 부담 등 대부분의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음을 떠올리면, 이번 합의는 전격적이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우리 수출 전선에 드리웠던 불확실성의 먹구름이 걷힌 셈이다.

 

이번 타결은 단순히 관세 조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압박 속에서도 우리 정부가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국익 중심의 냉철한 협상 전략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지난 수개월간 20여 차례의 장관급 회담과 수많은 실무 협의가 이어졌고, 그 결과 미국이 일부 핵심 사안에서 한국의 논리를 수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대표를 “터프한 협상가(tough negotiator)”라 부른 것도 상징적이다.

 

합의안은 우리의 현실적 한계를 반영한 절충의 산물이다. 쟁점이던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는 미국이 요구하던 전액 현금 투자가 아니라 2,000억달러 현금투자1,500억달러 조선업 협력 형태로 조정됐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연간 현금 투자 한도를 연간 200억달러로 제한했고, 환율 변동성에 따라 투자 시기와 규모를 조정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됐다. 또한 투자 대상을 한미 공동위원회가 선정하도록 하여 상업적 타당성과 원리금 회수 가능성을 보장했다.

 

하지만 이번 협상이 끝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경쟁의 서막이다. 세계는 지금 ‘자유무역의 종식’과 ‘보호무역 회귀’라는 거대한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된 시대, 한국의 전략적 선택은 더 이상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라는 양면 전략으로는 버틸 수 없다. 경제안보가 곧 국가안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 시대의 냉혹한 현실을 압축한다.

 

우리는 이제 자유무역협정(FTA) 체제 아래에서 누리던 무관세 수출의 혜택을 잃었다. 앞으로 15%의 관세가 부과될 예정인데, 평균 5~10%의 영업이익률로 버티는 제조업 입장에선 치명적인 부담이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관세 회피를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릴 경우, 국내 투자와 고용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산업 생태계의 근본적 붕괴를 막기 위한 대응이 시급하다.

 

정부는 이번 협상을 통해 세계 통상질서의 격변 속에서 ‘겨우 한 고비를 넘겼다’는 냉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그 속도는 한국이 예측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 산업의 체질을 강화하고, 첨단기술과 에너지·조선·반도체 등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안보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따라서 산업스파이 등 외국 간첩을 색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노력도 시급하다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기업이 뛰어야 경제가 산다는 상식적 진리를 회복해야 한다. 지금처럼 ‘노란봉투법’이나 ‘중대재해법’ 등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을 옥죄는 반(反)기업법이 남아 있는 한, 경제안보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기업이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안보 전략이다. 외환시장 안정, 산업 경쟁력, 기술 자립 모두가 국가 생존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은 다른 한 편으로는 경제적 경고다. 향후 경제안보를 국가안보의 중심 축으로 세우지 못한다면, 관세협상 타결의 성과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포착하는 전략적 리더십,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국가 경영의 본질이다.

 

TheGraceH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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