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잠수함 연료 요청, ‘핵주권’으로 가는 첫 문을 두드리다
한미정상회담 모두발언
“디젤 잠수함, 北-中 추적에 제약
핵 연료공급 땐 우리가 핵잠 자체 건조
미군 해역 방어 부담도 줄어들 것”
칼럼니스트 / 진종구 박사

이재명 대통령이 10.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APEC 비공개 정상회담에서 “핵추진잠수함의 연료를 대한민국이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군사기술 이전 요구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이제 ‘핵연료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전략적 선언이며, 자주국방을 위한 ‘핵추진 해양전력의 독립’을 향한 첫 걸음이었다.
핵추진잠수함의 심장은 ‘핵연료’다. 이 연료는 일반 원전에서 쓰이는 저농축우라늄(LEU)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과 영국 해군이 사용하는 잠수함용 원자로에는 우라늄 U-235를 약 40% 농축에서 90% 이상까지 농축하여 사용 중이고, 미국의 경우 93.5% 수준의 고농축우라늄(HEU, Highly Enriched Uranium)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 고농축 연료는 부피가 작아도 출력이 높고, 수십 년 동안 교체 없이 작동할 수 있다. 즉, 잠수함이 장기간 수중에서 작전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고농축’ 때문에 핵무기 전용 위험이 뒤따른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HEU를 철저히 통제하고, 대부분의 민간 원전은 20% 미만의 저농축우라늄만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이 동맹국에 이런 핵연료를 제공할 때는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연료의 제작, 관리, 공급, 반납까지 전 과정이 정부 간 협약 아래에서 이뤄지며, 군사·안보·비확산 규정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해군용 원자로 연료는 특수 금속(지르코늄 합금 등)으로 만들어지며, 전용 시설에서 조립·검증된 뒤 미 해군의 경로를 통해 이송된다.
공급망의 핵심에는 BWXT, Nuclear Fuel Services 등 미국 내 전문업체와 미 해군핵추진기관(Naval Nuclear Propulsion Program)이 있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핵잠 연료를 받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 첫째, 연료의 종류와 농도(HEU 또는 LEU)에 대한 명확한 합의. 둘째, 연료 제조와 수출을 허용하는 정부 간 협정 체결. 셋째, 연료의 사용·관리·반입·반출 과정에 관한 비확산·안전·감시·책임 규정을 담은 기술·법적 약정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의 요청은 바로 이 까다로운 절차를 열기 위한 ‘정치적 신호’로 해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허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는 외신 보도(Reuters)는 협상 여지를 확인시켜 준 셈이다.

그러나 연료 공급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핵추진연료는 결국 ‘폐연료’를 남긴다.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문제는 안전과 환경, 그리고 국가안보의 핵심이다.
만약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핵잠 연료를 공급받게 된다면, 동시에 국내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재처리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권한도 함께 확보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바로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이다. 이 기술은 사용후핵연료를 고온 금속 상태에서 전기화학적으로 분리·정제하는 과정으로, 핵무기 전용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자원 재활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미국은 오랫동안 핵확산 방지의 이유로 고농축우라늄 제공과 재처리 기술 이전에 극히 신중했다. 한국과 미국은 이미 수년째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연료주기 협의를 이어왔지만, 결정적 진전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요청은 ‘공급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재처리 권한’까지 포함하는 종합 협상안으로 제시했어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핵주권의 완성이었을 텐데, 재처리 권한은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단순히 무기를 사오는 나라가 아니라, 기술을 만들어내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핵추진잠수함의 연료를 요청한 것은 그 출발점이다.
하지만 그 연료를 어떻게 쓰고, 다 쓰고 난 뒤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까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자립은 반쪽에 그칠 것이다. 핵연료의 공급과 재처리, 두 가지 모두가 우리의 자주국방과 에너지 주권을 결정짓는 열쇠다.
이재명 대통령의 요청은 그 첫 문을 두드렸다. 이제 필요한 것은 용기 있는 후속 협상이다. 미국이 문을 열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 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핵추진잠수함의 연료는 단지 잠수함의 연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움직이는 ‘국가 자립의 연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