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Health & Common Sense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말을 끊는 사람들

Marquis.JIN 2025. 11. 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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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헤럴드 / 진종구 칼럼니스트

 

나는 대화를 좋아합니다. 정확히는 대화를 나누며 느껴지는 서로의 온도를 좋아합니다. 같은 말을 나누어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온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배려와 겸손, 경청이 오가는 대화는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신명이 나지만, 어떤 대화는 끝나고 나면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습니다. 많은 말이 오갔지만, 그 무엇도 전달되지 않고 서로의 말이 허공에서 부딪치다 땅에 떨어진 것만 같은 느낌 때문입니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 걸까요? 그 서툰 대화의 공통점을 짚어보니 '말을 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이미 답이 굳어진 채 자기 생각만 말하려는 사람, 눈은 나를 보지만 마음은 저 멀리 다른 곳에 있는 사람, 혹은 나의 말을 거울처럼 반사하며 자신의 판단만 돌려주는 사람. 그들 때문에 대화가 끊기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발견은 다름 아닌 친구와의 대화에서 찾아왔습니다. 조용히 내 말을 듣던 친구가 조심스럽게 건넨 한 마디. "너도 가끔 내 말을 끊어."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아 맞아, 나도 그런 적 있어"라며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어느새 대화의 중심을 내가 차지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가로채고 있었습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니, 내 주변의 '말끊러'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누구는 평소에 의견을 말할 기회가 없어서, 누구는 큰 걱정거리를 안고 있어서, 누구는 너무 많이 알아서. 우리 모두는 단지 서툰 방식으로 연결되고 싶어 하는 몸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나는 후배와의 대화에서 그 서툰 몸짓을 멈추려 애썼습니다. '나도 그런 프로젝트를 해본 적 있는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저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 "어떤 기분이었어?"라고 물었습니다. 후배는 이야기를 마치고 "형, 저랑 대화 나눠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때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좋은 대화가 될 수 있구나! 어쩌면 진짜 대화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의 말이 충분히 익을 때까지, 상대의 마음이 충분히 열릴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말입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말을 끊기도 하고, 끊겨지기도 하는 서툰 대화를 나눕니다. 하지만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평생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서로의 온도를 맞춰가는 그 서툰 과정, 그 자체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모든 서툰 몸짓이 쌓여 언젠가는 진짜 대화가 될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조금 더 기다리려 애쓰는 것입니다.

 

TheGraceH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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