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orldAffairs

원화는 왜 금융위기 때 휴지가 되는가

by Marquis.JIN 2025. 12. 23.
반응형

칼럼니스트 / JayGee JIN

 

달러화가 매입 기준으로 1,500원을 넘어썼다. 위기 국면에서 통화의 운명은 그 나라의 경제 규모가 아니라 통화의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 원화가 위기 때마다 급격히 무너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 재정의 위험성은 단순한 부채 비율 숫자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한국이 빚을 내고 있는 통화가 ‘기축통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가 말하는 국가채무비율은 52% 수준이지만,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면 GDP 대비 130%에 육박한다. 이 수치가 진짜 위험한 이유는,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 유럽과 같은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사실상 기축통화로 인정받는 통화는 달러화,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위안화 다섯 개뿐이다. 이 나라들은 위기가 오면 자국 통화를 찍어도 세계가 받아준다. 국채를 발행해도 글로벌 자본이 사준다. 그래서 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서도 버틴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GDP 대비 260%에 달해도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원화는 다르다.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다. 국제 결제 수단이 아니며, 원유·원자재를 결제할 수도 없다. 위기 상황에서 원화를 아무리 찍어내도 세계는 이를 받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은 원화를 가치 없는 종이, 즉 휴지로 취급한다. 외환위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국가채무가 기축통화국에서는 ‘관리 대상’일 수 있지만,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에서는 ‘폭발물’이다. 부채가 늘어나고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외국 자본은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환율은 급등한다. 환율이 오르면 외채 상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 악순환이 바로 1997년 IMF외환위기였다.

 

더 심각한 것은 지금 한국에는 외환 안전판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한미·한일 통화스와프는 모두 끊긴 상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을 지탱해 준 일본과의 700억 달러 통화스와프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일본은 외환보유액만 1조 3천억 달러에 달하는 기축통화국이다. 구조적으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부는 복지 지출을 줄일 수 없고, 세수는 줄어든다. 빚은 늘어나는데 통화는 약하다. 이 조합은 외환위기의 교과서적 전개다.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는 순간 시장은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계산은 언제나 냉혹하다.

 

국가 부채 문제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통화의 위상 문제다.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의 부채와, 원화로 빚을 내는 한국의 부채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차이를 무시하는 순간, 위기는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TheGraceHerald.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