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ligion

기독교, 형식이란 그릇 없이 은혜의 비는 담기지 않는다

by Marquis.JIN 2025. 11. 18.
반응형

진종구 목사의 종교칼럼

 

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갈대라는 '형식'을 만날 때 비로소 노래가 된다. 물은 형체가 없으나, 항아리라는 '형식'을 입을 때 비로소 목마른 자를 위한 생수가 된다.

 

우리는 흔히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형식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라고 쉽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쪽짜리 진실이다.

 

영혼이 육체라는 집을 떠나는 순간을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듯, 내용이 형식을 떠나는 순간 신앙은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지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형식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질서이자, 은혜를 담아내기 위해 예비된 견고한 그릇이다.

 

1. 군중과 사도_ 선택된 질서의 엄중함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수천 명의 군중이 구름처럼 그를 따랐다. 그들의 열정은 뜨거웠고, 그들의 믿음 또한 순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후, 오직 열두 명을 구별하여 '사도(Apostle)'라는 직분을 주셨다(누가복음 6:12-13).

 

왜 그러셨을까? 단순히 인원을 제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에베소서 2장 20절은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선포한다. 무질서한 군중이 아닌, 훈련받고 위임받은 '사도'라는 형식이 있었기에 복음은 체계적인 교회가 되어 2천 년을 흐를 수 있었다.

 

만약 예수님께서 "누구든 마음만 있으면 된다"라며 이 구별된 형식을 무시하셨다면, 복음은 감정적인 열기 속에 증발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2. 기름 부으심의 무게_ 전도사에서 목사까지

오늘날 교회 내의 직분 또한 마찬가지다. 전도사, 강도사, 그리고 목사로 이어지는 과정은 단순한 승진이나 계급 상승이 아니다. 이것은 흙이 빚어져 도자기가 되고, 불을 통과하여 마침내 성찬의 잔이 되는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이다.

 

혹자는 묻는다. "평신도의 진실한 기도가 목사의 기도보다 못한가?"라고. 인간적인 진실함의 무게는 같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적 권위(Spiritual Authority)'의 차원은 완전히 다르다. 물론 안수집사나 장로 등 직분자의 영적권위 또한 일반 성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성경은 병든 자에게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주 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야고보서 5:14)고 명한다. 이는 직분자에게 부여된 공적인 중보의 권세를 인정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 성막의 뜰을 밟는 수많은 백성이 있었으나 지성소의 휘장을 걷고 민족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이는 오직 기름 부음 받은 대제사장뿐이었다.

 

오늘날 목사의 축도(Benediction)가 단순한 기원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사라는 '형식'은 그 개인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직책에 당신의 대리적 권위를 입혀주셨기에 무거운 것이다. 그 형식의 옷자락 끝에 하나님의 약속이 흐르고 있다.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 / 픽사베이

3. 그릇이 깨지면 포도주도 쏟아진다

우리는 가끔 자유를 갈망하며 형식을 타파하려 한다. 예배의 순서를 지루해하고, 직분의 권위를 권위주의라 비판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뼈대가 없는 살은 무너져 내리고, 둑이 없는 강물은 범람하여 재앙이 된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고린도전서 14:33)이시다. 전도사가 강도사가 되고, 강도사가 목사가 되는 그 엄격하고 고단한 형식의 과정 속에, 목회자는 자신을 죽이고 십자가를 지는 법을 배운다. 그 무거운 형식을 견뎌낸 어깨만이 성도들의 아픔을 짊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도들이라면 형식을 낭만적으로 바라보자. 주일 예배라는 형식, 성찬이라는 형식, 그리고 목회자의 축도라는 형식. 이것들은 우리를 옥죄는 사슬이 아니라, 연약한 우리의 믿음이 세상으로 흘러내려 사라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거룩한 옹기그릇이다.

 

마음이 본질이라면, 형식은 그 본질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형식의 옷을 입지 않은 믿음은 벌거벗은 것과 같다. 그러니 교회 안에 세워진 거룩한 질서와 직분 앞에 겸손히 고개를 숙이자.

 

그 견고한 형식의 그릇 안에, 비로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의 단비가 찰랑거리며 차오를 것이다.

 

TheGraceHerald.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