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헤럴드 / 진종구 칼럼니스트

11월 20일 한·미 협상의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케빈 킴'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서해 중국 불법 구조물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었지만, 주한 미 대사대리는 숨기지 않았다.
“한미 양국은 서해 문제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 주한미국대사대리가 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불법 행위를 대신 말해주는 상황, 이 자체가 이미 비정상이다.
서해의 ‘잠정 조치 수역’은 구조물 설치가 금지된 곳이다. 그런데 중국은 이곳에서 무단 시설물을 꾸준히 늘려 왔다. 군사적 용도일 가능성까지 제기되지만, 한국 정부는 항의도, 철거 요구도, 국제적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도 이 문제는 입에조차 오르지 않았다.
이 빈자리를 미국이 채우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와 가까운 서해의 특성상 미국에게도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한미동맹의 현대화, 핵잠수함 도입, 역내 도전 공동 대응 등 강한 메시지를 던지며 한국 정부에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쉽게 말해, 미국은 자기 이익을 지키려고 말하는데, 한국은 자기 해영 영토주권의 문제조차 항의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침묵은 중국에게 더 큰 신호를 준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미국 발언에 곧바로 반발하며 “이간질에 넘어가지 말라”며 한국을 향해 사실상 훈계까지 했다. 한국이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은 한국을 주권국가가 아닌 ‘관리 대상’ 정도로 보고 있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국 정부의 태도다.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중국과의 갈등을 피하려는 듯하지만, 외교에서의 회피는 곧 해양 영토주권 포기와 다르지 않다.
중국이 우리 바다에 군사시설로 추정되는 구조물을 세우는 것을 침묵으로 넘긴다면, 그 다음엔 더 큰 기정사실화를 막을 수 없다. 상대가 침묵을 ‘동의’로 해석한다는 것을 역사는 이미 충분히 보여줬다.
더욱이 지금의 상황은 단순한 해양 분쟁이 아니다. 북한 핵 위협, 동아시아 군사 구도, 미국의 확장 억제, 이러한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다. 이때 한국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는 한국을 스스로 자신의 안보를 책임질 의지가 없는 국가로 본다. 그러면 우리의 발언권은 더욱 줄어들고 선택의 폭도 좁아진다.
미국이 우리의 문제를 대신 말해주는 동안, 우리는 왜 스스로 말하지 않는가?
국가의 해양 주권은 경제보다, 정치보다 우선하는 생존의 문제다.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다면, 남이 대신 말해주는 나라로 남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나라는 결국 스스로 지킬 바다도, 지켜줄 동맹도 잃게 된다.
TheGraceH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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